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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서울을 걷다


대한민국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나라다. 전쟁으로 모든 게 폐허가 된 공간에서 지금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건설한 점은 여전히 기적처럼 여겨지고 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변화의 굴곡을 더욱 현격히 느낄 수 있다. 때는 1900년대 초. 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제국이었다. 당시 왕이던 고종은 황제를 칭하며 부국강병을 꿈꾸었으니, 민주주의가 도입되려면 아직 멀었다. 사람들의 복장은 한복으로, 대부분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 상투를 튼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았던, 불과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우리의 조상들은 그리 살았다. 책의 저자인 버튼 홈스는 여행가이자 사진가였다. 그는 다소 낯설었을 서울의 모습을 글로 묘사했으며 동시에 사진으로도 남겼다. 여기서의 사진은 물론 흑백사진을 뜻한다.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이루어진 흑백사진은 자칫하면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대해 생각하면 오히려 흑백사진이라 당시의 느낌이 더 잘 살아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서울을 방문한 것은 1901년, 대한제국의 망국직전이었다. 1876년 강압적인 강화도 조약에 따라 문호를 개방한 이래 서양의 많은 것들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최하층에까지 새로운 문명이 전파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은 일종의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우선 사람들은 한복을 고수했으나, 차츰 단발령에 의해 서양인처럼 짧은 머리를 한 이들의 수가 늘었다. 하지만 신체의 일부를 훼손해서는 아니 된다는 강렬한 믿음에 서양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이 합해져 단발령에 대한 반발은 상당했다. 하지만 문명의 도입은 반발한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변화는 코리안들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다소 찡한(!) 결과를 낳기도 하였으니 전차에 얽힌 이야기가 바로 그랬다. 당시 사람들은 전차 레일을 휴식을 취할 때 베고 눕던 목침과 유사하다 여긴 모양이다. 목침과의 유사성에 취한 나머지 전차가 위험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았을 듯. 그 결과 레일을 베고 누워 단잠에 빠졌던 노숙인 두 명이 목 잘리는 비극을 경험했단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이야기란 말인가! 수는 많지 않았으나 저자 일행이 머물렀던 호텔 역시 현지인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장소였다. 아마도 한 몫 단단히 잡을 수 있지는 않을까 마음먹은 외국인들이 손님의 주를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금은 의외의 내용도 만나볼 수 있었다. 저자는 한국인들의 위생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고 본 듯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양이 좋은 순백색 상아의 멋진 배열을 보여 준다고 저자는 적었다. 치약도 칫솔도 없었을 그 시절, 사람들이 사용한 것은 소금. 손가락에 소금을 가득 묻혀 이빨과 잇몸을 문지른다는 구절을 읽으면서는 입안 가득 느껴지는 짠내에 나도 모르게 몸서릴 쳤다. 또한 저자는 흰옷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을 했으며, 전통적인 다듬이질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를 했다. ‘다림질을 하지 않는 대신 한 쌍의 나무 막대로 두드려 펴는데, 그 과정에서 옷이 매우 훌륭한 고유의 광채를 내게 된다’며 심지어 ‘나무 막대로 옷을 두드릴 때 나는 고유의 음악은 서울의 특징적인 소리 중 하나’라고까지 칭했다. ‘수백 명의 부인들이 나무로 된 다림질 막대기로 연주하는 실로폰 래그타임 음악’이라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다듬이질이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아도 1901년 서울은 풍전등화(風前燈火)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곳에서는 이득을 취하며 나름의 기치를 발휘하던 명성황후는 일본인들의 손에 비극적인 죽임을 당하였다. 이 나라를 탐하는 외세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저자는 러시아를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은 일본뿐일 것이라며 이후 역사를 예견키도 하였다. 다들 알았는데 코리안들만 몰랐던 것일까? 마치 내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씁쓸하기도 했다.
버튼 홈스의 서울 여행기인 Seoul, the Capital of Korea를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완역하였다. 뿐만 아니라 홈스의 일정을 따라서 그가 묵었던 호텔과 방문한 유적과 사찰, 그가 만나거나 언급한 사람들에 대해서 각 장 끝에 주석을 달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여행가로서 그가 갖고 있는 오해나 당시의 잘못된 상식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싣되, 현대에 와서 연구를 통해 밝혀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들은 주석으로 배치하여 당시의 실상과 그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이 어떠했는지 명확히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버튼 홈스의 원서에는 실리지 않았으나 관련된 희귀 사진과 삽화들을 다른 옛날 잡지와 단행본, 사진엽서 등에서 찾아 수록함으로써 원서보다도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20세기 초의 서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의 말 ___ 4
일러두기 ___ 8

1. 코리아로 가는 길 ___ 11
2. 제물포 ___ 21
3. 서울 도착 ___ 35
4. 서울의 낯선 광경들 ___ 45
5. 박기호 씨 ___ 59
6. 서울 관광 - 종각, 파고다 탑 ___ 67
7. 서울 관광 - 궁궐 ___ 73
8. 비운의 왕비와 아관파천 ___ 91
9. 서울의 외국인들 ___ 105
10. 전차 ___ 113
11. 활동사진 ___ 121
12. 거리에서 ___ 129
13. 모자의 나라 ___ 137
14. 교통사고와 독립문 ___ 147
15. 왕족 이재순 ___ 159
16. 서울 근교 여행과 불교 ___ 169
17. 왕비의 새 묘역 ___ 177
18. 궁궐 방문과 코리아의 무용수 ___ 191
19.‘은둔의 왕국’의 미래 ___ 203

버튼 홈스에 대하여 ___ 212